6대손 56명 자손 모두 재림성도 가정 이룬 김석곤 목사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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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세 천사의 기별이 전해진 지 어느덧 120년이 됐다. 그 안에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100년의 재림성도 가계(家系)를 이루고, 100년의 재림신앙을 면면히 이어온 옹골찬 이들이 있다.
은퇴 후 몽골에서 자급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김석곤 목사 일가가 그렇다. 이들 가정은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 살던 증조할머니가 재림기별을 받아들인 후 현재 6대손에 이르기까지 고고하게 재림신앙을 전승해오고 있다.
김 목사의 집안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증조할머니 전창용 집사로부터. 당시 감리교인이었던 증조할머니는 갓 시집온 며느리 박선행 집사(김 목사의 할머니)를 인도해 기독교 가정을 일궜다.
그러던 어느 날, 읍내에서 전도회를 열던 우필원 목사의 천막집회에 참석하게 됐다. 무려 한 달가량이나 계속된 전도회에서 두 여인은 진리를 발견하고, 재림교회로 개혁했다. 이후 증조할머니는 매주 안식일이면 자신의 집을 내어 가정예배를 시작했다. 봉건주의 시대의 폐쇄적 여성상과는 달리 보기 드문 안목과 결단력을 지닌 신여성의 모습이다.
우필원 목사가 부여에서 전도회를 연 시기와 전창용 집사가 재림교회로 개혁한 연도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1932년 5월 12일 부활의 소망을 품고 잠들었으니 약 100년은 족히 됐을 것으로 짐작한다.
전 집사가 눈을 감은 후에는 며느리인 박선행 집사가 가정예배를 이어갔다. 그는 7명의 자녀를 신앙적 배경에서 양육했고, 김 목사의 부친인 김용선 장로도 그런 어머니에게서 재림신앙을 배우며 자랐다. 아내 박길태 집사와의 슬하에 둔 6남매를 어린 시절부터 신실한 재림성도로 키웠다. 그렇게 전해진 신앙은 이제 6대손 56명의 대가족이 국내외에 살면서 모두 재림교인인 축복의 가계로 뿌리를 내렸다.
수십 년 세월이 흘렀지만, 김 목사에게 교회와 관련한 추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체신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공주우체국으로 전근하자 온 가족은 고향을 떠나 이사했다. 공주교회에서의 어린이성경학교는 정말 즐거웠다. 면류관을 쓰고 율동하던 그 시절은 지금도 무척이나 그립다. 당시로서는 ‘첨단장비’였던 환등기로 설교를 들었던 기억은 꽤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아있다.
이후 김용선 장로가 무교지인 부여 규암우체국장으로 발령 나면서 가족은 잠시 이별해야 했다. 장성한 자녀는 공주에 남아 학업을 이어갔고, 동생들은 부모님을 따라 이사했다. 규암에서는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어린 삼남매가 가정예배를 드렸다.
특히 넷째인 김신곤 목사(충청합회 은퇴)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교회가 없는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친구들이 큰 교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안, 삼남매는 가정예배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진리와 재림신앙에 대한 긍지를 지키도록 가르쳤다. 가끔 문서전도인들이 방문해 안식일마다 전해주는 말씀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달콤했고, 큰 위로가 됐다.
교회의 발전과 전도를 위해 헌신하셨던 부모님의 모습은 생생하다. 오랫동안 묵묵히 터전을 지켜오던 부여교회의 건축과 설립에 앞장서서 헌신하셨다. 부모님은 늘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구하고 최선을 다한 후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만을 끝까지 의지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교훈은 자녀들에게 신앙의 원칙이 됐다. 그러고 보면 부모님은 말보다 행동으로 본을 보여주신 분이었다.
이제 김석곤 목사의 형제와 자손들은 후세대에게 이 신앙을 전승하겠다는 결심을 가슴에 아로새긴다.
“일찍이 증조할머니를 감리교회에서 재림교회로 부르셔서 6대의 가계가 남은 무리가 되었고, 땅끝까지 마지막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재림신앙은 온 가족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사랑의 끈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물려준 최대의 유산은 재림신앙입니다. 이 유산을 자자손손 전승하는 게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김 목사는 후대에 재림신앙을 유산으로 남기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 번째 사명을 이루는 일이며, 믿음의 선배들이 전해준 영원한 복음을 전해주는 바통 터치”라고 의미를 짚고 “우리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재림신앙을 자자손손에게 전승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가족의 신앙역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한 사람의 전도자가 부여라는 불모의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결과가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이뤘는지 헤아려졌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진리에 바로 서서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한 집안에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사명에 충성해야 하는 이유를 ‘실물교훈’처럼 보여주는 듯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후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기자의 마음에는 마치 이 기사를 읽을 모든 신앙의 후세대와 독자들에게 전하는 간절한 당부처럼 다가왔다.
“우리에게 신앙유산이 얼마나 고귀한지 늘 감사하게 여깁니다. 거친 세파에 때때로 힘들고 어렵더라도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견딥니다. 그리고 곧 하늘에서 다시 뵐 날을 생각하면 끝까지 인내하는 힘이 됩니다. 우리 모두 이 소중한 재림신앙을 다음 세대에 유산으로 꼭 물려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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