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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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목사와 어니스틴 ‘티니’ 핀리 사모는 수십 년에 걸쳐 훌륭하게 사역한 부부다. 내외는 사역으로 감동받은 이들의 삶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이제 ‘황혼’에 접어들었지만 주님을 섬기는 두 사람의 헌신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은퇴가 사역의 마지막이 아닌 오히려 다른 형태를 통한 사역의 지속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시간이었다.
핀리 부부에게 목회는 직업 그 이상이었다. 소명이며 삶과 관계를 꼴 짓는 길잡이가 되었다. 부부의 이야기는 변화시키는 신앙의 능력과 인간 정신의 회복력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핀리 내외는 미미한 시작부터 활동의 정점에 이르기까지 타인을 위한 봉사에서 헌신, 연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초기 생애
어릴 적 마크의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였고 아버지는 개신교도였다. 하나님의 섭리로 재림교인 평신도를 만나고 나서 아버지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부모님의 신앙이 다른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크에게 자신이 믿는 기본 교리를 소개해 주셨지만 결혼할 때 자녀를 가톨릭 신자로 키우겠다는 사제와의 약속을 존중했다.
그런데 마크가 17살이 되어 중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아버지가 아들을 불렀다. “신부님과 약속한 대로 너를 가톨릭 신자로 키웠다. 하지만 너도 다 자랐고 이제 대학에 가려고 하니 너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있다.”
마크는 아버지와 기계 공장에서 함께 일했다. 매일 아침 일터로 가면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성경의 원리들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나눈 성경 공부 덕분에 마크는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1963년 3월, 침례를 받고 매사추세츠주 사우스랭커스터에 있는 이전 애틀랜틱 유니언 대학(AUC)의 신학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이 학교는 2018년에 문을 닫았다.
그곳에서 그는 어니스틴 티니를 만나 결혼했다. 졸업 후 마크는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2년 동안 전도사로 일했고 티니 사모는 인근 교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마크 목사는 졸업 직후 신학대학원에 바로 가지 않았다. “사역에서 경험을 쌓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앞으로 제가 할 일에 뿌리를 내리고 설 시간이 필요해서 몇 년은 W. D. 프레지 장로와 와일드우드 의료 선교 연구소에서 일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안 그분은 저의 멘토가 되었습니다. 청중을 강단 앞으로 이끌어 결심시키는 법을 그분에게 배웠고, 성경적인 설교를 배우고, 성령의 강력한 역사도 경험했습니다.”
그곳에서 부부는 서던 뉴잉글랜드합회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마크 목사는 곧바로 교회에 새로운 유형의 전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3~4주 동안 도시에 가서 단기 공중 집회를 개최하는 대신 젊은 사람들을 데려와 더 오랫동안 교회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마크 목사의 결정은 1910년 2월 27일에 엘렌 화잇이 보았던 이상에 기초한 것이었다. 화잇은 “과거의 방법을 따르는 사역에 단호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여러 달 동안 그 장면이 마음에 떠올랐다.”고 기록했다. “단체들이 주요 도시에서 일할 수 있도록 조직을 갖추고 부지런히 훈련받아야 한다고 나는 권고한다. 둘씩 짝을 지어 일하고, 때때로 모든 사람이 함께 모여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기도하고,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접근할 방법을 계획하여 최대한 시간을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1 이것이 수년간 마크 목사가 따른 전도 모델이었다.
핀리 가족은 뉴잉글랜드에서 미국 중서부의 레이크연합회로 이주해 지역 전역 특히 시카고에서 전도회를 개최했다. 그들은 레이크연합회와 신학교 간의 협력 벤처인 레이크연합회 씨 뿌리기 연구소(Lake Union Sowing Institute)라는 복음 전도 훈련 학교를 시작했다. 2년 뒤 영혼을 구원하는 이 연구소는 북미지회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마크 목사는 그때의 경험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되돌아본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제 마음을 성경적인 생각으로 채우고 신학교 학생들이 질문에 예리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도전을 받았던 때였어요.”
시카고에서 6년을 지낸 뒤 마크 목사는 유럽의 교회를 섬기도록 부름 받았다. 1985~90년에 트랜스-유럽지회의 목회부장으로 일했다. “사회주의 국가, 공산주의 국가에서 일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거기였습니다. 우리 부서에는 폴란드,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세 곳의 사회주의 국가가 있었습니다. 해외의 경험은 마음을 넓혀 줍니다. 해외 파견은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폭넓은 세계적 사역에 대한 안목을 제공했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온 뒤 마크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은 통찰력을 세상에 전하려는 목적으로 1956년 조지 밴드먼이 창설한 국제 TV 프로그램인 ‘잇이스리튼(It Is Written)’의 방송 사역을 맡게 되었다. 마크 목사는 2004년까지 ‘잇이스리튼’을 위해 여행하며 설교했다.
2004년에 그는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 있는 대총회로 부름 받아 처음에는 세계선교부장으로 봉사했고 이후 2005년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대총회 총회에서 대총회 부회장에 선출됐다.
황혼기
마크 목사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대총회에서 은퇴하려 했던 때를 이야기하면서 웃음 지었다. “2010년에 아내 티니와 저는 6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은퇴를 선언하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윌슨 목사님이 대총회장으로 선출되었을 때였지요. 제가 무대 위로 올라가자 그는 나와 악수하며 ‘진심으로 내 보좌관 중 한 사람으로 남아 줬으면 좋겠다.’는 의미의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마크 목사는 지난 14년 동안 대총회장 보좌가 되어 시간제로 봉사했다.
완전히 은퇴하지 못한 채 핀리 부부는 선교의 다른 길들을 열어 왔다.
수년 동안 티니 사모는 모든 교회가 기독교 일꾼을 위한 훈련 학교가 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세미나를 이끌었다.2 2009년에 내외는 버지니아주 헤이마켓에 있는 도미니언밸리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티니 사모는 ‘교회 부지용’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있는 건물을 보았다. 티니 사모는 남편에게 “재림교회와 훈련 학교가 필요한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마크 목사는 자신이 대총회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미 꽉 찬 프로그램에 다른 일을 추가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티니 사모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할게요.”라고 대답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문을 열어 달라고 그들은 함께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의 응답이 놀라운 방식으로 나타났다. 티니 사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저는 세미나를 이끌면서 전도를 위해 교회를 훈련하는 방법 즉 전도 전 사역과 전도 준비 모두에 대한 전체적인 개념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그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매물로 나온 부동산이 있는데 이제 우리도 나이가 있으니 은퇴하고 한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고 말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그 부동산에 전도 훈련학교를 짓고 싶어요.’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지금껏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분이 저에게 다가와 그 훈련학교에 대해 더 말해 줄 수 있냐며 말을 걸었어요. 저의 희망을 말하자 다음 날 그분이 저에게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쓸 돈 5만 달러를 기부하라고 영감을 주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티니 사모는 집에 가서 마크 목사에게 하나님께서 전도 훈련 학교를 위해 5만 달러를 주셨다고 말했다. 부동산 매입을 위해 지정 계좌를 개설하자마자 연락이 왔다. 어떤 사람이 5만 달러 기부 소식을 듣고 그에 맞춰 돈을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7,000달러를 기부했다. 내외가 전진하기를 하나님께서 바라신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핀리 내외는 버지니아에 가서 그 부지를 살펴보았는데 그 뒤 부동산 중개인이 그들에게 도서관을 위해 예정된 마을의 또 다른 부지에 대해 말해 주었다. 시에서 그것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의한 상태였다. 도서관으로 쓰려고 했던 곳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허락해 줄까? 소유자는 원래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그들에게 판매할 생각이었다. 핀리 부부는 여기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분의 섭리를 더 많이 찾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필요한 자금이 모두 마련될 것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제 부동산을 매입하기만 하면 되었다.
핀리 목사 내외는 버지니아주 헤이마켓에 토지를 매입하고 훈련 학교를 시작했고, 티니 사모가 말했듯이 은퇴 후에 그곳에 살고 있다. 새로 출범한 리빙호프 교회는 버지니아주 워링턴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시작됐는데 그 교회는 출석률이 매우 낮았다. 그런데 교인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교회 그룹은 헤이마켓에 있는 리빙호프 교회의 기반을 형성하기 위해 이사했다.
오늘날 리빙호프 교회에는 교우 약 250명이 출석하며 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그들은 워링턴에 교회를 또 개척할 계획이다. 북미 전역에서 목회자 수백 명이 전도 학교의 훈련 과정에 참석했다. 그들은 1년에 7~9회의 모임을 갖고 있으며, 보통 각 모임 기간은 약 5일 정도다.
마크 목사와 티니 사모는 이 모든 일이 은퇴한 이후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세계를 순회하며 설교하고 가르치면서 전도회를 이끌고 대총회장을 돕고 나눔의 책을 집필해 왔다. 실제로 핀리 부부는 최근 케냐의 11개 지역 2만여 수신 장소에서 7개 언어로 진행되는 ‘아프리카에 희망을(Hope for Africa)’이라는 위성 전도회에 참여했다. 그 집회에서 약 197,000명이 침례를 받았다. 오전에는 목회자와 평신도 300~400명이 참석하는 전도 현장 학교를 운영하며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은퇴 전보다 은퇴 후 일이 좀 더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 했던 일을 하고 있지만 거기에 훈련 학교, 수련회 및 기타 전도 활동과 같은 활동이 추가되었어요.”라고 티니 사모는 말했다.
새로운 프로젝트
티니 사모가 언급한 다른 일들에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유튜브 사역, 라디오 방송, 목회자와 교회 사역자를 위한 수양회 등이 있다.
유튜브
지역 교회에서 “미디어 전문가가 아닌 평신도”와 함께 유튜브 사역을 시작했다고 마크 목사는 말한다. “이제 우리는 최고 수준의 팀을 갖춘 유튜브 사역을 구축했습니다.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유튜브 채널인 ‘호프라이브 365’는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23만 8,000여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튜브 시청이 가능한 모든 국가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매주 최소 2~3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이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와 침례를 받고 있다. 마크 목사는 전 세계 중국어권 사람들을 위한 전도 시리즈에 유튜브 사역을 활용했다. 그 모임에서만 조회 수 1천만 건을 기록했다.
라디오
지난 6개월 동안 미국 최대 기독교 라디오 네트워크인 ‘살렘 방송(Salem Broadcasting)’이 마크 목사의 설교를 프로그램 라인업에 추가했다. 최근 어느 방송사의 오찬에서 전국의 프로그램 감독들이 마크 목사의 성경적 설교에 흥미를 느꼈다. 살렘 방송은 200여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마크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살렘 방송 내에서 우리는 복음주의 공동체 사람들과 훌륭한 관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우리의 봉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우리를 위해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3
수련원
핀리 부부는 조용한 수련회를 위해 목회자들을 초대하는 수련원 두 곳을 소유한 비영리 단체 호프라이브 복음 사역을 설립했다. 이 공간은 특히 목회자, 교회 사역자 및 사역 그룹이 와서 휴식을 취하고 잘 준비된 채식으로 식사하고 운동하면서 사역이 성장하도록 돕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리빙호프 교회에서 교회 성장, 전도, 세 천사의 기별 등에 관한 수업에 참석한다. 이는 사역 수련회에 대한 전인적 접근 방식이다.
“이것이 우리의 은퇴 생활이에요. …은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라면서 티니 사모는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우리는 이 삶이 좋아요. 활력을 되찾았어요.” 마크 목사도 수긍한다.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10년, 20년 전에는 열지 못했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다고 믿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이전보다 더 넓은 비전이 있습니다. 유튜브와 라디오 사역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고, 수련원은 우리에게 목회자들과 함께 일하고 훈련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핀리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을 맺는다.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은 예수를 섬기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은 우리 각자에게 은퇴 후 삶의 목적을 부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를 제공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활력을 주고 새로운 비전으로 영감을 제공합니다. 여러분이 즐길 수 있는 사역 영역을 찾아 매주 시간의 일부를 그 사역에 자원하십시오. 자신이 기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축복이 될 것입니다.”
1 White, Ellen G. A Call to Medical Evangelism and Health Education. Nashville, TN: Southern Publishing Association. 1933. P. 13.
2 참조 엘렌 G. 화잇 『치료봉사』, 149
3 마크 목사의 라디오 설교는 OnePlace.com에서 ‘Mark Finly’를 검색하여 들을 수 있다.
베스 토머스 『애드벤티스트 월드』 부편집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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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가 사역의 마지막이 아닌 오히려 다른 형태를 통한 사역의 지속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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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의 은퇴 생활이에요. …은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라면서 티니 사모는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우리는 이 삶이 좋아요. 활력을 되찾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