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 부흥회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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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 부흥회는 1840년대 미국의 윌리엄 밀러와 제2차 대각성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재림 운동 시기에 널리 퍼진 전통이다. 1842년의 세 차례 집회를 시작으로 재림 천막 부흥회는 1843년에 40회, 1844년에 55회로 급증했다.1
대실망 사건 이후 초창기 재림 신봉자들은 한동안 천막 집회의 개최를 주저했다. 그러다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공식적으로 조직된 지 4년 후인 1867년이 되어서야 소규모 지역 천막 집회가 잇달아 개최됐다. 이러한 소규모 집회의 성공으로 대총회는 ‘전 지역을 위한’ 장막 부흥회 개최를 논의했다.2
이 평범한 천막 집회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첫째, '영적 선'의 원천으로서, 둘째, '사람들에게 우리의 관점을 전하는 것’이었다. 3 시골 환경이 이러한 집회의 목적을 실천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 재림교인 에프라임 H. 루트가 자원하여 미시간주 라이트에 있는 자신의 농장을 집회 장소로 내주었다.4
재림교회 장막 부흥회의 발전
이것이 첫 공식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장막 부흥회였고, 이 행사는 1870년대에도 북미 전역에서 연례 모임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해 갔다. 1880년대에는 신자들이 영적 격려와 재충전을 위해 모이는 정기적인 ‘장막 부흥회 시즌’ 생겨나면서 자리를 잡았다. 또 재림교회 서적과 교육 등을 홍보하는 장이 되었다.
집회의 횟수는 꾸준히 늘어나 본 교단은 1904년까지 북미에서 68차례 장막 집회를 개최했고 전 세계적으로 15번의 집회가 추가로 개최되는 성과를 거뒀다.5
장막 부흥회의 또 다른 주요 목적은 복음 전도의 매개체 역할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윌슨 가족에게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입증됐다.
장막 부흥회로 초청하다
기술자이자 농부이며 사업가인 윌리엄이라는 한 남자가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1870년경 미국으로 건너왔다. 아내 이저벨라와 함께 필라델피아에 살면서 기관차 제조 기술자로 일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서부로 향했고 캘리포니아 북부 레드우드에서 벌목 일을 하다가 힐즈버그 근처에 정착한 뒤 윌리엄은 과일과 소를 돌보는 목장주가 되었고 시골 가게도 하나 소유하게 되었다.
부부는 윌리엄(주니어), 레이, 너새니엘, 월터 네 아들을 낳았다. 어느 시점에 이저벨라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되었지만 남편은 종교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1905년 캘리포니아 힐즈버그 근처에 재림교회 야영회를 위한 천막이 세워졌다. 이저벨라와 아이들이 집회에 참석했고, 그는 남편에게 안식일 예배에 함께하자고 권유했다. 기쁘게도 그녀의 남편이 참석했다.
윌리엄이 천막 아래에 앉자 강사는 예수에 대한 놀라운 진리를 펼치기 시작했고, 모든 죄인은 구주가 필요하며 자신들의 삶을 그분이 변화시키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교자는 간절히 호소했고, 놀랍게도 윌리엄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 주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렸다. 그리고 1년 동안 소중한 재림 기별을 연구했다. 안식일에 가게 문을 닫았고 미래의 일을 하나님께 맡겼다. 그는 침례를 받은 후 힐즈버그 재림교회의 수석장로가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삶을 변화시키셨다.
윌리엄과 이저벨라 윌슨은 나의 증조부모이시며,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며 설교한 사람은 엘렌 G. 화잇이었다. 제임스 화잇이 세상을 떠난 뒤 엘렌은 힐즈버그로 이주하여 퍼시픽유니언 대학의 전신인 힐즈버그 대학 근처에 살고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 너새니얼은 어릴 적 엘렌 화잇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그녀의 발치에 앉아 있는 자신과 형제들에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모습을 기억하고 계셨다. 윌슨 가족은 엘렌 화잇의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복음 전도 덕분에 귀중한 재림 기별에 관하여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중요한 전도 활동
엘렌 화잇은 “장막 부흥회는 우리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모든 계층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6이라고 기록했다. 오늘날 장막 부흥회는 중요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신자들 간의 친교, 영감적인 음악과 강연 그리고 실용적인 워크숍을 나누는 훌륭한 장일 뿐 아니라 중요한 복음 전도 활동의 도구로 계속 활용되고 있다.
화잇은 마치 현시대를 살고 있는 듯 이어 진술한다. “야망과 전쟁, 쾌락과 돈벌이 등이 사람들의 생각을 장악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사탄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수단을 활용해 일할 태세를 갖췄고 유예의 기간이 끝나 자비의 문이 영원히 닫힐 때까지 사람들이 속고, 기만당하고, 얼이 빠지고, 취하게 한다. 온 세상 즉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셋째 천사의 구원하는 기별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7이라고 기록했다.
교우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이 장막 부흥회에 참석할 뿐 아니라 그런 경험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이들을 초대하고 동행하여 그들도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라는 말씀을 경험케 하기를 바란다.
1 참고. Michael W. Campbell, “Camp Meeting,” Seventh-day Adventist Encyclopedia, accessed Mar. 31, 2024, https://encyclopedia. adventist.org/article?id=I92L&highlight=campmeeting
2 Arthur W. Spalding, Captains of the Host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49), 354
3 Editor’s note, 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 Aug. 11, 1868, 128
4 See Michael W. Campbell, “Camp Meeting.”
5 “Historical Summary,” 1905 Yearbook of the Seventh-day Adventist Denomination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05), 185
6 엘렌 G. 화잇, 『교회증언 6권』, 31
7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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