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사슬을 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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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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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영접하고 재림교인이 된 뒤에 나는 서던 재림교회 대학에 입학했고 학생 선교사 프로그램에 가입했다. 내가 부름을 받은 곳은 니카라과의 정글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문 앞에 달아 놓은 해먹에 앉아서 마태복음을 읽다가 6장 8~15절의 주기도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그렇습니다. 주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럼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예. 그래야지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물론이고말고요.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당연하지요.
문제는 그다음이다. 예수님이 이 기도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해 놓으신 것이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는 ‘난 정말 용서받은 사람이야. 어떤 원한도 품고 있지 않거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내 깨달았다. 내가 여전히 풀어 버리지 못한 과거의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것을.
용서하기 위한 몸부림
상처를 받으면 용서하기가 더 힘들고 당한 고통이 클수록 용서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폭우가 쏟아지는 정글에서 문득 상처 입고 겁에 질렸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14년 전이다. 전혀 이상할 것 없어 보였던 밤샘 파티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최악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당했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이튿날 아침, 나는 성추행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메스껍고 더러운 기분은 처음이었다. 내가 당한 일이 부끄러웠다. 너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를 추행한 두 ‘친구’에 대한 쓰린 감정과 수치심은 서서히 좌절과 분노 그리고 완전한 증오로 변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가족들과 이사를 갔고 내 기억에도 먼지가 쌓였다. 그런데 정글 속에 있는 나에게 느닷없이 예수님이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들을 용서하라고요? 말도 안 돼요. 예수님, 제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들은 끝까지 저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어요. 그 녀석들이 영원히 벌 받았으면 좋겠다고요.’
하지만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았고, 나는 과거의 포로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원한, 분노, 증오는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그날 비바람 속에서 나는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그분은 내 눈길을 십자가로 이끄셨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어 가시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저지른 모든 잘못의 대가를 그분이 치르고 계셨다. 내가 사람들에게 당한 괴로움을 거두어 달라는 말은 꺼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4).
죄는 삶의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지은 죄뿐 아니라 나에게 가해진 죄까지 지고 돌아가셨다.
교인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는 예수님이 나의 죄책을 거두어 가시도록 허락했다. 그러면서도 이 괴로움은 꽉 끌어안은 채 나의 분노를 ‘합리화’하고 있었다.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걸 왜 끌어안고 있는 거지?’
14년 동안 나는 이걸 쥐고 있었다. 분노하는 것은 나의 권리이며 그들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지 않은가?
용서에 해당하는 것
용서란 정의와 서로 다른 문제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둘은 서로 별개이다. 자신에게 가해진 어떤 잘못은 이 세상에서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정의를 회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무거운 응어리를 내가 일평생 끌어안고 살 필요는 없다.
그 두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그들에게 지배받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나는 더 이상 희생자로 살고 싶지 않았고 예수님이 나를 승리로 이끄시도록 허락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그들을 어떻게 용서해야 할까? 전화를 걸어야 하나? 나는 니카라과의 정글에 있다. 부모님에게도 전화할 수 없는 곳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용서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들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다면 그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용서란 성숙해지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내게서 고통을 취해 가시고 용서를 내 안에 흘러넘치게 하시도록 내가 승낙해야 비로소 나는 고통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다시 폭풍 치는 오두막 문 앞의 해먹에 앉은 현재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나를 ‘통하여’ 예수님이 그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드렸다. 그러자 생애 처음으로 그 사건에 대해 마음이 평안해졌다. 무거운 응어리가 언제 있었나 싶게 녹아내렸다. 자유를 얻은 것이다.
용서에 해당하지 않는 것
용서란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용서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이 꼭 관계를 다시 맺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학대나 조종을 당하는 관계인 경우는 특히 그렇다. 어찌 됐든 용서는 언제나 진정한 화해의 선행 조건이다.
용서는 감정이 아니다. 인간적으로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아픔이 있다. 만약 우리가 감정에 근거해 용서하려 한다면 가장 가슴 아팠던 일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용서는 정의가 아니다. 용서하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잘못이 바로잡힌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세상에서는 정의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용서는 학대를 은폐하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가 만약 “나를 용서해 줘. 하지만 제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줘.”라거나 그와 비슷한 부탁을 할 때 용서는 하되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은 물어야 한다. 이 과정을 함께 헤쳐 갈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용서는 약한 게 아니라 강한 것이다. 상대가 용서를 구하지 않았거나 그럴 생각도 하지 않는데 어쨌든 용서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강하다는 증거이다.
전쟁 속에서
용서와 관계된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코리 텐 붐이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겪은 일을 진술한 『주는 나의 피난처(Hiding Place)』1에 소개되어 있다.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코리의 가족은 레지스탕스와 함께 일하며 유대인과 다른 사람들을 자기 집에 숨겨 주었다. 그들은 건축가에게 최대 6명을 수용할 수 있는 비밀의 방 ‘피난처’를 짓게 했다. 나중에 경찰은 텐 붐의 가정을 급습해 가족과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했지만 ‘피난처’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이후 10개월 동안 코리는 모질고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체포된 지 얼마 안 되어 그녀의 아버지는 옥사했다. 코리는 3개월간 독방에서 지냈다. 나중에 코리와 언니 벳시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마지막에는 라벤스브뤼크로 이송됐다. 1944년 12월 6일, 벳시는 거기서 죽었다. 코리의 세상은 악몽으로 변했다. 그러나 벳시의 말이 마음속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하나님에게 다다르지 못할 만큼 깊은 구덩이는 없단다.”2
벳시가 죽은 지 12일 만에 코리는 라벤스브뤼크에서 풀려났고 남아 있는 것을 찾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라벤스브뤼크에 있을 때 코리와 벳시는 전쟁이 끝난 뒤의 삶에 대해 꿈꾸고 이야기하곤 했다. 코리의 꿈은 네덜란드에 강제수용소 생존자들을 위한 재활센터를 짓는 것이었다.
재활 활동을 하면서 코리는 용서에 관한 놀라운 교훈을 깨달았다. 나치에게 잔인한 학대를 당했지만 과거의 원수를 용서한 사람은 신체적인 상처가 아무리 커도 바깥세상으로 되돌아와 삶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한을 떨쳐 버리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병자로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코리는 1946년, 전쟁 이후의 독일을 순회하며 강연하다가 이 교훈을 이론이 아니라 몸소 체험하게 된다. 그는 독일인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말씀을 전했고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는 그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내던지신다고 알려 주었다(미 7:19).
설교를 마치고 청중이 조용히 문밖으로 나가고 있을 때였다. 코리는 그 남자를 보았다. 라벤스브뤼크에서 보았던 익숙한 간수의 얼굴이었다. 그 순간 수용소에서 겪었던 감정과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간수였던 그 남자가 코리에게 다가와 설교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신다는 말을 듣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그 남자는 자신이 라벤스브뤼크의 간수였다고 고백했는데 그다음 이어진 그의 행동에 코리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 남자가 손을 내밀며 그녀에게 용서를 구했던 것이다.
그 순감의 감정을 코리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그는 손을 내밀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나는, 블루멘달 사람들에게 그토록 용서해야 한다고 설교했던 나는 정작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 예수여.’ 나는 기도했다. ‘저를 용서하시고 제가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나는 미소를 지으려고 했고, 손을 들어 보려고 애썼지만 되지 않았다. 일말의 따뜻함이나 자비의 불씨도 생기지 않았다. 다시 한번 나는 숨을 내쉬며 조용히 기도했다. ‘예수님, 저는 이 남자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용서를 저에게 주십시오.’
마침내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 어깨에서부터 전류가 나의 손을 타고 그에게로 전달되는 듯했고 이 낯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마음에서 샘처럼 터져 나왔다.
그렇게 나는 알게 되었다. 세상에 치유를 가져다주는 것은 우리의 선함도 우리의 용서도 아니며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의 용서라는 것을. 그분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하실 때 그 명령과 함께 그 사랑 자체도 선물로 주신다.”3
예수님은 우리 각 사람이 원한이라는 고통스러운 감옥에서 해방되기를 바라신다. 예수께서 나를 통하여 용서하시도록 구하는 것은 그분께서 나의 삶에 치유와 자유를 가져다주시도록 권한을 드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 그 짐을 예수님께 드리라. 그분께서 우리 대신 그 짐을 떠맡고자 하신다.
*2023년 3월 호 『애드벤티스트 리뷰』에 소개된 글이다.
1 Corrie ten Boom, The Hiding Place (Uhrichsville, Ohio: Barbour Pub.,
1971)
2 앞의 책, 211
3 앞의 책, 231
- 마이클 지 아이다호 머리디언-에멋 재림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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