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추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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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들 운동화를 사기 위해 아울렛에 간 적이 있다. 똑같은 가죽과 똑같은 깔창 그리고 똑같은 박음질을 했는데 색깔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가격이 몇 만 원씩 차이가 나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옷은 최근 유행이 지나면 곧바로 반의 반값으로 떨어진다. 그 외에 자동차나 심지어 주택도 편의성이나 실용성이 가치 기준이 아니라 디자인이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되는 경우들을 많이 본다.
또한 한 끼 먹는 것에도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똑같은 스테이크라도 어떤 그릇에 담는가, 어떻게 주변을 장식하는가, 어떤 식탁에서 먹는가에 따라서 가격이 차이가 나며 또 그 식당이 시장의 골목 가게인지 아니면 멋진 풍경과 음악이 흐르는 고급레스토랑인지에 따라서 엄청난 가격 차이가 있다. 누구나 똑같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한 끼에 불과한데 왜 가격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레스토랑 사장에게 따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말 못 먹을 요리가 아니라면 분위기에 값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보는 것뿐만 아니라 듣는 것에도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고등학교 시절 바이올린과 첼로의 선율에 빠져서 음반을 사고 늘 들으려고 소형 카세트와 헤드폰을 구입하는 데 거금을 들인 적이 있다. 아마 독자들 중에도 뮤지컬이나 음악회 티켓을 싸지 않지만 직관을 위해 재정을 지출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에 사람들은 돈을 쓰는 것을 대부분 아까워하지 않는다. 또 유명한 음악가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인해 막대한 돈을 벌기도 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아름다움은 아무 가치가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 삶의 전반에 녹아 있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예쁘고 매력적인 것,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이스트 고등수학부 김상현 교수는 수학도 아름다움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수학자들이 찾는 진리는 체계 안에서 의심 없이 성립하는 진리를 찾는 학문인데 다른 학문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이 정해져 있어서 자연과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각 분야에서 연구하고 발견해 나가지만 많은 수학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아름다움의 추구이다. 실생활에서 이용하는 수학은 아주 극히 일부이며 대부분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가 아름다운 숫자로 소개한 것이 3.141592라는 원주율인데 3 또는 4처럼 자연수로 딱 떨어지지 않고 무한 반복되는 이 비율이 신기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수학을 아름답다고 하는 이들이 필자에겐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다. 정말 무미건조한 학문 중에 수학이 1등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름다움이 수학의 대상이라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 수학뿐 아니라 이주영 서원인문사회미학연구소장은 그의 책 『현대 미학』에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된 관심사”라고 주장하며 현대 미학의 주요 흐름은 존재론, 생철학, 현상학, 표현론, 정신분석학 그리고 기호학적 미학을 다루고 있다고 제시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예술론을 넘어 많은 학문에 주제가 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토록 비효율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가치를 둔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라고 한다면 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성이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자연선택설에 잘 부합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자연 선택은 진화론의 핵심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은 가장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을 남기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짧은 목을 가진 기린은 멸종하고 목이 긴 것들이 선택받아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종교도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며 종교가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오래 살고 자손을 더 번창시켰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술성을 추구하거나 도덕이나 윤리를 중요시하는 태도는 살아남기 위한 것과는 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생존 경쟁을 통해 우위를 점해야 하는데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은 도태되기 딱 좋은 성향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에게 생존에 유리하지도 않아 보이는 미를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가 생기게 되었을까? 앞에서 말했듯이 진화의 우연한 산물이라고 보기엔 너무 억측스럽다. 과연 그 시작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만약 우주를 창조하신 신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분이며, 그가 만든 사람을 포함한 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을까? 그런데 필자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적어도 이 논리에 부합하는 분이시다. 구약 성경 전도서 3장 11절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라는 구절 속에서 기독교의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신이며 그는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셨다고 하였다. 또한 화잇 여사의 『교육』이라는 책 37쪽에는 “모든 미의 창조자시요 또한 친히 미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기록하였다. 『재림신도의 가정』 27쪽에는 “미의 애호자이시다. 당신의 손으로 이룩하신 업적으로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우리에게 주셨다. 세상을 만드신 분은 우리의 시조를 위하여 에덴에 아름다운 동산을 두셨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은 미를 창조하시며 미를 사랑하는 분이신데 그 증거가 바로 아름다운 에덴동산이다. 에덴은 정말 최고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비록 에덴동산에는 갈 수 없고 죄로 인하여 가시와 엉겅퀴가 함께 있는 세상이지만 신약 성경 로마서 1장 20절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라고 말씀한다. 이 세상 만물은 만드신 분을 분명하게 증거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돈을 써서라도 아름다움을 향유하려고 하는 마음은 미를 창조하시고 미를 사랑하는 분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인간이기에 아름다움을 통해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사랑의 창조주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자 노래하는 새들과 형형색색의 꽃들로 우리 주위를 둘러 주셨다. 가끔 숲속을 거닐며 아름다운 새소리와 꽃 향기 속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시려는 창조주의 목소리를 듣게 되기를 바란다.
- 최준태 별새꽃돌과학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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