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난사와 고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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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란드시아 이오난사(Tillandsia cyanea)라는 이름의 식물이 있다. 일 때문에 우연히 얻게 된 식물인데 좀 재미있는 녀석이다. 크기는 솔방울보다 조금 크고 생긴 것은 파인애플을 닮은 작고 귀여운 모습이다. 바위나 나무에 붙어사는 착생식물로 수분과 먼지를 공중에서 흡수하며 살아간다. 이오난사는 뿌리가 거의 보이지 않고 생애 한 번 꽃을 피운다. 꽃이 진 후 뿌리가 있는 부근에서 자구가 생긴다고 한다. 공기 정화에 효과가 있고 인테리어용으로 활용도가 좋아서 많이 각광받는 식물이다.
처음 택배로 받았을 때 사전 지식도 전혀 없고 평소에 식물을 잘 못 키우던 터라(나는 정말 화분을 잘 죽인다. 요즘 말로 똥손이다.) 사진 몇 장 찍고는 다시 상자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며칠을 방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물의 상태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검색을 해 보니 이오난사라는 이름이 있었고 함께 보내온 새 모양의 소품은 그냥 인테리어용이 아니라 이오난사를 꽂아 두는 화분이었던 것이다. 관심을 가져서 그런 건지 화분에 얹혀 있는 모습이 제법 귀엽고 보기 좋았다.
다행히 물을 주는 방법도 무척 간단했다. 비교적 관리가 쉽다고 알려진 이오난사는 일주일에 한 번 그릇에 물을 담아 10~20분 정도 담가 놓았다가 꺼내서 화분에 다시 꽂아 주면 된다. 그게 부족하다 싶으면 미스트를 하루에 한두 번 뿌려 준다. 의외로 까탈스럽기도 해서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썩고 빛을 좋아하지만 또 빛이 너무 강하면 화상을 입기도 한다. 코코넛껍질이나 조개껍질 심지어 철제 프레임에서도 잘 자란다. 코코넛껍질의 상단에는 이오난사를 하단에는 수염틸란드시아라는 식물을 연결해 공중에 매달아 놓고 키우는 행잉 플랜트(hanging plant) 또는 에어 플랜트(air plant)에 잘 맞는 식물이다.
우리 집에 입양 온 지 몇 달이 지났고 나름 정성을 들여 키우고 있는데 좀 아리송하다. 마치 죽지도 살아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꽃도 피고 번식도 한다는데 도무지 변화가 없다. 몇 달을 키웠으면 이파리라도 하나 늘어나야 하는데 처음 들여올 때처럼 여전히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일주일에 한 번 물에 담궜다가 살아가는 이오난사가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하루 두 시간 예배에 참석한 후 한 주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죽지도 크지도 않고 늘 그 크기를 유지하고 변하지 않는 그 모습이 날 많이 닮은 것 같아 측은한 마음으로 이오난사를 바라보게 되었다.
작년에 슬픈 일이 있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평소에 화분 가꾸기를 좋아하셔서 늘 베란다에는 싱싱한 화분들이 가득하였었는데 몇 년 동안의 투병 생활이 이어지면서 아무도 화분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결국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베란다의 화분들도 전멸했고 거실에 있던 작은 고무나무 화분 두 개만 애처롭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님 댁에 갔다가 고무나무 화분 하나의 받침대가 오래 되어서 삭아 깨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베란다에 여분의 화분 받침대가 있어서 교체해 주려고 했더니 어찌된 일인지 받침대와 화분이 분리가 안 되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랫동안 화분에 물을 주지 않자 고무나무는 스스로 살아남겠다고 뿌리 하나가 화분 구멍을 뚫고 나와 받침대에 달려 있던 서랍형 물받이까지 진출한 것이다.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남편과 함께 뿌리를 잘라 받침대를 분리해 교체해 주고 물을 충분히 주었다. 그러자 간신히 이파리 몇 개 붙어 있던 고무나무가 서서히 살아나는 것이다. 갈 때마다 열심히 물을 주었더니 완전히 살아나서 이제는 제법 이파리가 풍성해졌다. 상심하셔서 관심이 없으시던 아버님도 갈 때마다 고무나무에 물을 주라고 하신다. 새삼스럽게 그 생명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식물의 성장 과정이 환경과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뿌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너무도 확연하였다. 뿌리가 없어도 사는 이오난사는 이파리만으로 수분과 영양을 섭취하고 15cm 정도 성장하는 것이 전부이다. 반면에 뿌리가 있는 고무나무는 물이 공급되면 짧은 시간에 새로운 이파리가 돋아나고 풍성하게 살아난다.
비슷한 시기에 경험한 이오난사와 고무나무의 생태를 보며 나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으로 한 주를 살아가는 이오난사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미미한 영적 성장에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 본다. 그 모습이 라오디게아 교회와 얼마나 흡사한가? 우리에게는 신앙의 깊은 뿌리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말라비틀어진 화분 속에 있어도 믿음의 뿌리가 있다면 생명수를 다시 공급받는 순간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생명수를 공급받으면 우리의 영적 성장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 김정은 제1회 사인즈어워즈 최우수상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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